칭다오에서 보내게 된 크리스마스
어릴 적에는 크리스마스에 흰 눈이 펑펑 내리길 기도하며 들뜬 마음으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12월 내내 흰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렸습니다. 왜 그렇게 12월 25일이 설레고 좋았을까요? 참 순수하고 좋은 게 많았던 시절입니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며 크리스마스가 전처럼 설레지 않게 되더군요. 눈이 오면 걸을 때 옷이 더러워져 귀찮고, 인사발령으로 어수선해진 회사 분위기에 눈치 보며 지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공휴일이라 쉬고 쉽은 마음에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2살이 되어가는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다 보니 재미도 있고 어릴 적 생각도 나면서 설렘이 몽글몽글 다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이와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이고 칭다오라는 낯선 도시에서 보내게 되어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고, 크리스마스에 어떤 옷을 입힐지 생각하며, 타오바오에서 아이 아빠가 입을 산타할아버지 수염과 의상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크리스마스가 다른 나라와 다르게 공휴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럴 수가! 심지어 이번 크리스마스는 월요일인데 남편 없이 아이와 보내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크리스마스는 금지령?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라 종교적인 기념일이 공휴일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2017년도에는 성탄절 금지령도 내려져 크리스마스트리는 물론 관련 행사를 전혀 못하게 했다는데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며 연말 분위기를 기대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해외 브랜드가 많이 입점된 대형 쇼핑몰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완샹청에 가보니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이 정문 앞에 크게 생겨 성탄절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며 브랜드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합니다. 애플(apple) 매장에는 산타를 상징하는 빨간 스웨터를 입은 직원들로 북적이며, 조말론(Jo Malon)도 진저 브래드와 사탕들로 가득합니다. 다른 중국의 도시들은 잘 모르겠지만 칭다오 시내는 금지령이 내린 암울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아닙니다. 중국은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전날인 크리스마스이브를 독특하게 보낸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평화로운 밤'을 뜻하는 핑안예(平安夜)라고 하는데, 이 발음과 사과를 뜻하는 핑구어(苹果)의 발음이 유사하다 하여 선물로 사과를 준다고 합니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오지 않아 이런 문화가 보편적인지 몸소 체험을 하지 못했지만 타오바오에 찾아보니 정말로 있습니다. 사과를 담는 고급 포장 상자도 판매하고 '평안'이라는 문구가 담긴 사과 상자도 팝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마트에 잘 포장된 크리스마스 사과를 판다고 하니 꼭 가봐야겠습니다.
중화사상 중국인의 해외 브랜드 사랑
크리스마스 금지령이라던지 본인들 입맛에 맞게 개조한 사과를 주고받는 문화 등 중국에 살다 보니 중국인들의 자국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느끼는 게 많이 있습니다. 우선 간판이나 전단지등에서 영어단어를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저같이 중국어 까막눈에게는 영어 단어 하나가 소중한데 정말로 없습니다. 전 세계가 서양문화에 물들어 생활하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본인들의 언어와 문화를 너무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방문화를 배척한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국 문화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면 어쩔 때는 뚝심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아이와 둘이 처음 칭다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일입니다. 짐이 많아 공항 직원에서 도와달라고 Help를 외쳤었는데 이 간단한 단어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소통이 안 됐던 일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도와주기 싫어서 모르는 척 하나 했지만 정말로 모릅니다. 레스토랑의 젊은 직원에게 시원한 물을 달라고 Cold water와 Ice water를 외쳐 말했지만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던 적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물론이지만 젊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인이 왔다 갔다 하는 공항직원이 영어를 못하니 말 다한 것이죠. 애플 매장이나 스타벅스에 영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직원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사람들이 기초영어를 필요이상으로 너무 많이 공부하여 잘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자국의 문화 보호 차원이 아닌 교육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중화사상이라는 자문화 중심사상이 떠오릅니다. 중국인들은 본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세계 공용어가 중국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쩌면 배울 필요가 없다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외 브랜드는 아주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테슬라, 애플, 나이키 등 중국인의 사랑은 대단합니다. 중국 와서 테슬라 차들이 너무 많아 놀랐고 애플 매장에 항상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도미노 피자 앞에는 항상 줄 서 먹어야 하며 한 쇼핑몰 안에 스타벅스는 3개나 있습니다. 영어는 잘 안 배우지만 왜 중국어 발음은 영어로 표시하는지도 궁금해집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 아이러니 합니다.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드나 봅니다. 연관이 없어 보이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시작해 중화사상까지 온 걸 보면 말입니다. 왜 중국에는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지 하다가 생각이 번진 듯합니다. 작년까지는 휴일이었던 크리스마스가 중국에 와서 평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남편 없는 크리스마스를 아이와 잘 보내야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에게 '평안'이라고 한글로 써서 사과를 선물해 봐야겠습니다. 그래야 중국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새롭고 독특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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